2번째입니다.
2008/07/27 - [사진/캄보디아] - 킬링필드의 학살자, 폴 포트 (1)2008/07/27 - [사진/캄보디아] - 킬링필드의 학살자, 폴 포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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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대학살자 폴 포트. 1925년 부유한 지주의 유복한 8남매 중 하나로 태어난 그는 빠리 유학 시절 공산주의+민족주의의 신념을 굳히고 귀국, 1962년 캄보디아 공산당 우두머리가 되어 시아누크 정권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전개한다.
그 무렵, 이웃 베트남에서 일어난 월남전은 캄보디아의 운명에 결정적인 여향을 끼친다. 시아누크의 부하 론 놀이 1970년, 미국에 비협조적이던 시아누크를 몰아내고 친미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내 반전 여론에 따라 월맹과 강화를 맺고, 75년에는 캄보디아마저 포기하고 동남아에서 철수한다.
이제 캄보디아는 드디어 외세의 지배 없이(?)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캄보디아의 새로운 비극의 시작일 뿐이었다. 1975년 론 놀을 몰아내고 프놈펜에 입성한 폴 포트의 크메르 루즈군은 자치농경사회 이상향 건설에 나선다. 그러나 이 극단적이고도 무모한 사회주의 실험은 8백 년 전 캄보디아의 태평성대를 재현하기는커녕, 사상 유례가 없는 학살극으로 변한다. 그는 캄보디아의 모든 기득권층을 탄압 학살하여 킬링필드를 연출했다. 전 국민을 강제노동으로 내몰았다. 가족제도조차 폐지되고, 절대 권력인 앙카르(조직 이라는 뜻, 공산당 상부구조를 가리킴)가 가족을 대치했다. 모택동의 문화혁명을 뺨치는 이 광적이고도 반인류적인 공포정치에서 캄보디아인의 1/3인 2백만 명이 죽었다.
이런 캄보디아의 비극은 3년 후인 1978년 12월, 베트남군이 캄보디아를 점령함으로써 종말을 맞는다. 캄보디아에 친 베트남 정부(헹삼린, 훈센 정권)가 들어서고 폴 포트의 크메르 루즈 정권은 그 후 몰락의 길을 걸었다. 폴 포트는 점점 힘을 잃어갔고, 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그러다가 1997년 부하들에게 체포되어 자택 연금 상태로 지내다가 1998년 사망했다.